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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과 기업가 정신1> 무인도섬테마연구소 윤승철 대표, 강연 진행
2023-09-22 hit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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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 대표는 9월 13일 학생회관 대공연장에서 “사막과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최연소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실크로드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으며,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했다. 최근 8년 동안은 우리나라 및 해외의 많은 무인도에 방문해 생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무인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윤승철 무인도섬테마연구소 대표가 강연하고 있다


공부를 싫어했던 고등학생, 학교 밖으로 모험을 떠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안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 중 청소년을 선발해서 일주일간 두바이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일주일간 출석 인정 및 식비·경비를 모두 지원해 준다는 말에 바로 지원했고, 서류를 통과하기 위해 할 줄 모르는 아랍어와 영어를 잘한다고 기재했다. 그는 그렇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혼자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이 앞의 두 지원자에게는 영어로 질문을 했지만, 자신에게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아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중에 면접관 중 한 분에게 왜 자신이 붙었냐 물어봤는데, 고등학생 지원자가 본인 혼자여서 뽑혔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와 면접을 본 사람들은 모두 대학교에 다니고, 영어에 능통한 대학생들이었다. 그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힘들어 보이고 잘 안될 것 같은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거나 위법하지 않는 선에서는 일단 도전해 보는 게 좋겠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 윤승철 대표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4대 사막 마라톤 대회를 모두 참가하다


그는 4대 사막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 모두 참가하게 된다. 각 사막에서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대회는 한 번 대회가 열리면 전 세계 40여 개국 130명 정도가 같이 달리게 되는 대회였다. 처음에 그는 완주보다는 좋은 경험을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참가를 결정했다. 사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유리를 밟고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정강이가 완전히 부러지고 발목뼈가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었었다. 그 후 또 다칠 것 같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대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5km 이상 뛴 적이 없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후 3년 반 정도 재활 치료를 받으며 시합 직전에는 10km를 뛸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회 참가비가 380만 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모아둔 돈이 없었던 그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자취방 보증금을 빼고 그 돈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 후 돈을 어떻게 메꿀까 고민하던 그는 대기업에 참가비를 후원해달라는 제안서를 작성해서 보내게 된다. 30곳의 회사 중 3곳에서는 거절을 당하고 나머지 27곳에서는 답장조차 오지 않았다. 그러나 출발 일주일 전 한 곳에서 제안서를 첨삭해 준다고 답장이 왔다. 제출한 긴 제안서를 회사에서 쓰는 제안서 양식대로 한 장으로 요약하는 첨삭을 받았고, 100군데의 기업에 제안서를 다시 보냈다. 그렇게 총 세 군데에서 답장을 받게 된 그는 참가비와 비행기 티켓, 등산용품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막 세 곳을 다녀온 후 마지막으로 남극 마라톤에 참여하려 했는데 남극은 참가비가 1,800만 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장미꽃 다발을 들고 지하철역 앞에서 꽃을 판매하고, 펀딩을 여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의 도전에 열정을 느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참가비를 지원받았고, 무사히 남극 마라톤을 완주해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무인도 탐험 프로그램을 시작하다


그가 무인도를 처음 방문하게 된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천의 항구에서 아무 선장님을 붙잡고 무인도에 데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도착한 섬은 북한과 맞닿아있어 민간인이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섬이었다. 그렇게 해경으로부터 쫓겨났고 생각과는 달리 방문에 제약이 있던 우리나라 무인도의 모습에 해외 무인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해외의 무인도에서 야자수를 따고, 직접 집을 지어보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 후 그는 그와 함께 무인도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무인도로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17명과 공항에서 만나 무인도를 다녀왔는데, 다녀와보니 이렇게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무인도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5년 처음으로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창업한다. 창업 후 5, 6년간 100회가 넘게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과 무인도 여행을 다녀온다.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해양수산부로부터 무인도 조사 연구원을 제안받고, 우리나라 무인도의 쓰레기를 줍는 비영리 봉사 단체인 ‘섬마을 봉사 요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의 꿈은 언젠가 무인도에서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다. 꿈을 갖기까지 시행착오도 겪고 다양한 경험을 해봤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찾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걸 안 하면 진짜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조건 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취재/ 김인우 홍보기자(inwoo915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