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투데이
NOW 세종인 #160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 수상자 김주영 동문을 만나다
-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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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동문
세계 3대 환경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올해로 22회를 맞이했다. ‘탄소중립’을 기치로 내걸고 “Ready, Climate, Action!”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이번 영화제는 세계 환경의 날인 지난 6월 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는 김주영(만화에니메이션학과·04) 동문이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녀를 만나 수상 소감과 작품 이야기 그리고 후배들을 향한 진심 어린 조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04학번 김주영이다. 졸업 후에는 단편 애니메이션과 방송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고, 틈틈이 배낭여행을 다니며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자연 속을 떠돌던 경험은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 경남과 전남 지역에서 생활하며 자연과 더 가까이 지냈고, 경남예술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과에서 약 7년간 강사로 일했다.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남편과 함께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Q. 대상 수상 당시 소감이 궁금하다.
A. 평소 좋아하던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3년간 함께 작업해 온 남편이 시상식에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도 컸다. 이 작품은 내가 둘째를 임신한 시기에 시작해, 둘째가 두 돌 반이 될 때까지 이어진 여정이었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실 영화를 완성했을 당시에는 이란에 있었고, 상영을 위해 데이터를 인편으로 전달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오류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결국 대상이라는 큰 결과로 이어져 감사한 마음이다. 당시 제주AI국제필름페스티벌 개막식과 일정이 겹쳐 시상식 참석이 어렵다고 전했는데, 영화제 측에서 내게 시상식에 꼭 와달라고 간곡히 요청해 왔다. 그때부터 ‘혹시 우리가 상을 받는 건가’ 하는 예감이 들었다. 결국 서울에선 장편영화로 대상을, 제주에선 단편영화로 최우수상을 받게 돼 올 상반기를 정말 뜻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Q. 이번에 참여한 두 영화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A.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행사로, 영화의 주제뿐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도 친환경적인 접근을 지향하는 영화제이다. 나 역시 생활 속 환경 보호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해 오랫동안 옷을 사지 않고, 아이들도 천 기저귀와 물려 입힌 옷으로 키우는 등 소소한 실천을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이 영화제는 마치 친정에 온 듯 편안했다. 반면 제주AI국제필름페스티벌은 최신 기술과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한 완전히 다른 결의 영화제였다. 사회자도 AI 홀로그램이었고, 국제 게스트의 발언이 실시간 AI 통역 프로그램으로 화면에 자막처럼 출력되는 등 기술적 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두 영화제는 지향점은 다르지만,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Q. 이번에 출품한 작품들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A. 장편 다큐멘터리 <종이 울리는 순간>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벌목된 가리왕산을 중심으로, 환경 파괴와 개발 논리에 관해 묻는 작품이다. 가리왕산은 조선 시대부터 천 년 넘게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었고, 생태학적으로도 유전자 보호 구역으로 분류될 만큼 귀중한 숲이었다. 하지만 알파인 스키장을 짓기 위해 결국 벌목이 이뤄졌고, 정부는 올림픽 종료 후 원상복구를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 주민들 간의 갈등, 복원되지 못한 숲, 환경법의 미비 등을 기록하며 ‘지속 가능한 올림픽’이라는 명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제작 과정에서는 15년간 가리왕산을 기록한 우이령 사람들과 직접 협업했고, 이탈리아 현지 촬영을 통해 국제적 시선에서의 공통된 환경 문제까지 조명하고자 했다. 한편, 단편 영화 <One Who Watches>는 AI를 주제로 한 실험적 작품이다. 장편 작업 중 쉬어가듯 만든 소규모 프로젝트였지만, 제주AI국제필름페스티벌을 비롯해 여러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예상 밖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는 텍스트 기반 AI와의 대화를 통해, AI가 정해진 규정을 얼마나 지키는지 실험한다. 이를 통해 ‘AI는 정말 인간의 도구일 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AI가 이미 통제의 선을 넘어선 존재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Q.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영화 제작 이후 관객들과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순간들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깊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커뮤니티 상영을 했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딸의 반응이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내용이 조금 어려워 아직 네 살 딸에게는 벅찼지만, 설화를 바탕으로 한 환경영화 <7개의 관문>은 끝까지 함께 본 뒤 “역시 새 옷은 사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먹고 싶은 게 생겼을 때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자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생활의 영향인지 작품의 영향인지 곱씹게 됐다. 관객들로부터 “이 영화를 본 뒤로 일회용품을 쓰지 않게 됐다”, “먹는 것 하나도 신중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작품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만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늘 노력해 왔고, “끝까지 재미있게 봤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그 노력이 보람으로 다가왔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Q. 영화 제작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A. 무엇보다 이탈리아 촬영이 가장 어려웠다. 올림픽은 국가가 유치하는 메가 이벤트인 만큼, 정부는 이를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보여주고 싶어 했다. 처음엔 유럽의 선진국이자 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이탈리아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공유하는 활동가들과의 협업이 가능할 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인터뷰와 촬영까지 마쳤지만, 중간에 “미안하지만, 모든 분량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정부 차원에서 부정적 내용을 언급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공지가 돌면서, 이미 편집까지 마친 분량을 통째로 엎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이 심리적으로도 매우 힘들고 무서웠다. 육아와 병행한 제작도 쉽지 않았다.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첫째를 돌보며 촬영과 편집을 함께 해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행히 국가의 돌봄 지원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 보육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다. 거제도에서 작업했기에, 양가 부모님이 멀리 계신 상황에서 사실상 부부 둘이 아이를 키우며 영화를 만들었다.
Q. 학부생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A. 나는 세종대학교 ‘덕후’였다. 중학생 때부터 꼭 가고 싶었던 학교였고, 당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있던 곳이 세종대였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청소년 잡지 ‘밥 매거진’에서 기자로 활동했는데, 세종대를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인터뷰하고 캠퍼스를 둘러보면서 “나는 꼭 이 학교에 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입학 후에는 말 그대로 꿈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이틀에 한 번만 집에 가고, 대부분은 학교에서 지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자는 문화가 당연했고, 밥솥과 냉장고를 들여와 작업실을 아예 집처럼 꾸민 선배들도 많았다. 나 역시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우며, 후배들에게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학점보다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3학년쯤에는 공부에도 욕심이 생겼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하루 3시간만 자며 작업과 학업을 병행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기에 그 순간조차 즐거웠다. 지금도 당시 교수님들 그리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행복한 몰입’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Q. 만화애니메이션텍에서 배운 전공 역량이 영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다양한 전공자들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요즘 흐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하다.
A. 애니메이션은 모든 프레임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섬세함과 완성도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편집 과정에서 작은 디테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류나 어색한 흐름을 잘 포착하는 편이다. 남편은 저널리즘 전공자로서 리포팅 중심의 시선으로 접근한다면, 나는 연출적인 디테일과 예술적 감각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작품 <One Who Watches>는 대부분 실사 촬영 없이 AI로 생성한 이미지로 구성한 영상으로, 제작 방식만 놓고 보면 애니메이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 병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두 장르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쌓은 감각과 제작 경험이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연출에도 스며들었다고 느낀다. 또한 나는 영화 제작이 특정 전공자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AI 영화제에서 만난 대상 수상자는 공대를 졸업한 사람이었고, 참가자 중에는 미대생, 심리학 전공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전공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한 진심이라고 믿는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는 남편과 함께 진행 중인 또 다른 작품 <잊혀진 마을>의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드(THAAD) 기지가 들어선 경북 성주를 배경으로, 오랜 시간 시위를 이어온 주민들과 상주한 경찰들 사이에서 형성된 공동체의 변화와 균열을 따라간다. 촬영 중 실제 시위가 종료되면서 ‘시위의 끝’과 ‘공동체에 남은 흔적’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 단계에서 폴란드 크라쿠프 영화제와 체코 이흘라바 영화제에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Q.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큰 상을 받아도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 많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소비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머무른다면, 언젠가 AI에게 이야기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와 사고가 필요하다. 특히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기반이 꼭 필요하다. 영화는 거창한 장비 없이도 만들 수 있다. 내 최근 작업도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핵심은 ‘기술’보다 ‘이야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먼저 찾아야 하고, 생각에만 머무르지 말고 직접 만들어봐야 한다. 의외로 첫 작품으로 상을 받는 경우도 많다. 지속적인 아이디어 생산을 위해서는 지식 탐구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나와 남편도 매일 해외 강의를 찾아 듣고 공부하는 편이다. 같이 듣고 토론하는 것이 우리에겐 큰 즐거움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왜 전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었으면 좋겠다.
취재/ 문준호 홍보기자(mjh3027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