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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역사학과 이지은 교수와 단종을 이야기하다
- 214호
- 2026.06.26
- 80
1,6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역사학과 이지은 교수와 단종을 이야기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단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단종을 아꼈던 세종대왕과의 관계가 주목받으며 역사 속 단종의 모습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학과 이지은 교수에게 단종의 이야기가 의미하는 리더십과 역사학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물었다.
▲역사학과 학과장 이지은 교수
오늘날 대중이 단종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담력과 용맹함, 백성과 소통하는 애민 정신같이 우리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리더의 자질이 구현됐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역사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이지은 교수이다. 인도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요즘은 역사 콘텐츠에서 역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연구하는 분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단종은 어떤 왕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종은 재위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아 인간적 면모를 추정할 만한 기록이 매우 적다. <왕과 사는 남자> 속 호랑이를 잡는 장면 역시 각색된 내용이며, 실제 단종의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 새롭게 그려진 측면이 크다.
다만 사료를 통해 살펴본 단종은 매우 원칙주의적인 임금이었으며, 어린 나이에도 깊은 학문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다. 실제 15~16세의 나이에 무과 과거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을 모아 놓고 직접 글을 읽으며 강론을 주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 속 단종은 유교적 예법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고, 학문적 실력과 자질을 조숙하게 갖추었던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종이 단종을 매우 아꼈다고 알려져 있다. 세종의 극진한 사랑과 가르침이 실제 역사 속 단종의 성품이나 리더십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연려실기술> 단종조에서 성삼문의 발언을 통해 세종의 극진한 사랑을 살펴볼 수 있다. 성삼문은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에게 충성하는 신숙주를 보고 “예전에 세종께서 살아 계실 때 너(신숙주)와 내가 집현전에 당번을 서고 있으면, 세종이 원손(단종)을 품에 안고 뜰을 거니시며 ‘내 시대가 가고 나면 이 아이를 잘 생각하라’ 하셨던 것을 잊었다는 말이냐”라고 옛일을 들어 신숙주를 꾸짖었다.
할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자란 환경은 단종의 성품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문치를 중시하고 유교적 가치관과 예법에 투철했던 단종의 면모는 세종의 가르침과 정신을 이어받은 결과라고 본다.
대중이 수백 년 전 단종의 비극에 이토록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단종의 이야기는 시대마다 대중의 심리와 열망에 따라 역사적 해석이 달라져 왔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단종애사》에서는 국권을 침탈당한 민족의 처지와 맞물려 정통성이 있으면서도 권력을 잃은 단종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경제 성장기였던 1980년대 드라마 《설중매》에서는 명분보다 능력주의와 실리를 대변하는 세조와 한명회에게 열광했다. 반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의 단종은 유약한 왕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현대 대중은 더 이상 혈통이나 정통성만으로 인물을 추앙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중이 단종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담력과 용맹함, 백성과 소통하는 애민 정신같이 우리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리더의 자질이 구현됐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 콘텐츠 속 단종의 변모는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당대 대중이 갈망하는 시대적 열망을 투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왕과 사는 남자> 열풍으로 단종 유적지를 향한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역사가 물리적인 공간과 만났을 때 미치는 영향력은 어떤지 궁금하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결국 공간이다. 역사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에서 공간은 과거의 것을 현실로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요소이다. 따라서 역사 연구에서 장소성은 매우 중요하다. 단종 문화제에서는 실제로 단종의 국장을 지내는데, 사실 국장은 한양에 있는 도성에서 행해지는 것이었지만 영월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종이 승하한 장소’라는 장소성과 연결되며, 대중들은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 먼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은 장소성이다. 그만큼 역사에 있어서 장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대학 역사학과는 답사 과목을 전공 필수로 운영하고 있다.
역사적 문화 콘텐츠가 역사를 대중화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허구와 사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역사 콘텐츠는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는 작품 특성상 매 순간 사실과 허구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인물에게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입히는 창작자들의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어느 정도 너그럽게 허용되고 장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은 최근 늘어난 지식 예능이나 역사 강의 프로그램이 맡아주면 좋겠다. 대중이 열광한 콘텐츠를 주제로 삼되, 강사들이 그 내용을 역사 사료와 비교해 가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작가적 상상력인지 명확히 구분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는 역사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오락·교양 프로그램은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교육적 기회로 활용된다면 두 매체가 완벽한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단종어진(사진제공=영월군)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역사학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한 말씀 부탁한다.
사실 요즘은 역사학을 전공하더라도 역사학자가 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의 흥미진진한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역사학적 지식을 활용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드라마 등을 제작할 때 역사적 개연성을 갖추려면 미시사 연구 같은 역사학적 식견과 안목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꼭 학자가 되는 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역사 콘텐츠를 만들고 역사학적 지식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방향으로 조금 더 시야를 넓혀 공부해 보면 좋겠다.
▲영월읍 단종 유배지 청령포


